[로라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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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리나게 추운 날이었다. 목욕 후의 물기 어린 몸으로 느끼기에는 더했다. 그렇기에 시바 포는 로라스의 품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단단하고도 따스한 그 팔에 안겨 있으면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배스로브 자락 틈새로, 덜 마른 머리카락에서, 시바 포의 온몸에서는 서향나무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겼다. 그 향은 그녀와 잘 어울렸다.
로라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시바 포는 그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로라스는 그녀가 발돋움을 하게 하는 대신 자신이 몸을 숙여 콧망울과 입술을 겹쳤다. 키스를 해 가며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시바 포는 살짝 그를 밀어앉히며 체중을 실었다. 자연히 침대에 상체를 누이게 된 로라스의 위로 시바 포는 퍼붓듯이 키스했다. 집어삼킬 것처럼 구는 그 입맞춤을 하던 시바 포는 자신의 오른손이 얹혀진 그의 가슴이 다소 빠르게 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로라스는 내심 그녀의 욕망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설렘을 주체하지 못했다. 단정하고 침착함을 가장하는 얼굴과 달리 몸의 반응은 노골적일 정도로 정직했다. 비단 심장박동으로만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시바 포의 눈이 빛났다. 풍성한 속눈썹으로 인해 그늘이 드리운 눈이었지만 욕정의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로라스를 내려다보며 옷을 벗어젖혔다. 그 윤곽만으로도 아름다운 상체로 그의 손길이 뻗어왔다. 풍만한 가슴을 손으로 감싸고 어루던 양손이 그 아래의 갈비뼈 부근으로, 이윽고 낭창한 허리께로 내려왔다. 손길을 따라 시선 역시 옮겨갔다. 이런 자태에 현혹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로라스는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녀가 언제고 덧없이 홀몰할지도 모른다는, 그림자 밑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헌데 그것이 지금일까. 시바 포의 윤곽이 흐릿해졌다. 어둠으로 녹아드는 형상이었다. 침실 벽에 비친 유려한 육체의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고혹적으로 내려다보던 시선조차도 말이다. 로라스는 당혹스러웠다.
“아, 아나벨라?”
다소 다급한 부름이 있고 수 초가 흘렀다. 허공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위에 올라앉아 있음에도 불구 모습을 감추자 놀라는 것이 시바 포로서는 몹시도 우스웠던 모양이다. 그렇게 놀라는 것도 당연했지만 말이다. 그의 눈앞에서 능력을 써서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잠자리에서 그런 적은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서 도무지 시선을 떼지 못하는 로라스의 모습에 지금 갑작스레 이럴 마음이 든 것 뿐이었다. 너무도 충실하게 놀라는 반응으로 따라주는 것에 시바 포는 한참을 키득거렸다.
어디로 향해야 할 지 몰라 하는 눈길, 그리고 그 속에서 한가득 묻어나는 놀람과 안타까움을 살피던 시바 포는 몸을 숙여 그의 옆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로라스는 분명 체온이 담긴 손길과 뒤이어 자신의 입에 포개지는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의중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나벨라, 어째서…….”
“쉿.”
검지가 그의 입술 위에 얹혔다. 뒤이어 귓전에 숨결과 함께 들려오는 속삭임.
“나는 여기 있어. 그러니까……, 당신은 그런 나를 느끼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런……, 으윽.”
대답하다 말고 로라스는 몸을 뒤척였다. 아까부터 일어서 있던 그것을 감싸는 손길 탓이었다. 짧게 숨을 토하며 로라스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맨 밑뿌리부터 끝까지 더듬다가 말아쥐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에 이내 숨이 거칠어졌다. 아래를 흘긋 내려다보았다가 자신의 하체로부터 눈길을 외면한다.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민망함이 더해졌다. 분명히 시바 포는 자신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결코 정사 중에 서로를 보는 것을 피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자신 역시 그랬고 서로를 향한 시선에는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은 종전과 달리 그렇게 눈으로 전해지는 것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자신은 볼 수 없으나 그녀는 지금쯤 자신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나체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나를 보고 있을까. 나의 어디를 보고 있는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가. 지금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제부터 나를 어쩔 셈인가.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그 어느 것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기대나 희열을 수반한 것이었고,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손길과는 다른 감촉이 성기를 감싸왔다. 로라스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 이건 설마 입으로…….
“아나, 벨라……. 하아……. 으웃.”
신음이라기보단 탄식에 가까웠다. 내가 지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지금 내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민망함과 흥분이 뒤엉켰다. 하체가 젖어서 번들거렸다. 아래에서는 조금 버거워하는 숨소리와 함께 콧소리가 들려왔다. 로라스는 손을 아래로 뻗었다. 보였다면 백은과 같은 빛을 띠었을 부드러운 머릿결이 잡혔다. 쥐어 잡는 건지 쓰다듬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손길로 그 머리를 매만졌다.
“하으…….”
“읍, 으응…….”
이따금 앞니가 닿아 오는 따끔함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입술, 작은 움직임에도 꿈틀거리는 혀와 한가득 감싸 오는 여린 점막의 느낌에 로라스는 몸을 떨었다. 그 부드럽고 따스하고 축축한 자극으로 인해 그의 남근은 있는 대로 단단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쪼옥 하는 소리와 함께 시바 포는 입을 떼었다. 턱이 당겨 오는 탓인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펠라치오에 집중하느라 잠시 놓쳤던 감상을 계속했다. 자신은 이미 반쯤 일어섰음에도 로라스는 여전히 아래로 시선이 가 있어서 우습기 짝이 없었다. 닿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저 눈길이라니. 자신이야말로 그를 관음하는 기분이었다. 허벅지가 맞닿는 감촉에 그가 잠시 멈칫했다. 위에 올라탄 시바 포는 여기를 보라는 듯, 한 손으로 로라스의 옆얼굴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당겼다. 그제야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어떤 기분이야?”
적나라한 애무에 대해 묻는 것일까, 아니면 보지 않고 오롯이 느끼는 이 행위에 대한 물음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대답은 하나였다. 로라스는 눈을 감고 자신의 얼굴에 올려진 손을 맞잡으며 중얼거렸다.
“도무지 모르겠군. 이것이 꿈처럼 느껴지네.”
“이게 꿈이라면, 나는 서큐버스(몽마)려나?”
짤막하고 나직한 웃음이 흘렀다. 로라스는 손을 뻗어 더듬었다. 시바 포의 골반이 잡혔다. 그것을 반쯤은 쓸어내리고, 반쯤은 아래로 끌어당기듯 하며 말했다.
“깨어서는 볼 수 없는 존재이니, 그대가 모습을 감춘 지금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군.”
시바 포는 속으로 다른 의미를 떠올려봤다. 몽마의 아름다운 자태는 환각에 불과하며 실상은 추한 형상이라는 설이 있었다. 헌데 자신의 인격을 떠올려보면 그 비유 역시 무리는 아니었다. 코웃음을 친 그녀는 하체를 내리면서 그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아래가 맞닿은 상태로 그 미간에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당신은 내게서 깨어나지도, 벗어나지도 못할 테니까.”
어딘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로라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음이 새나오는 입술이 겹쳐졌다. 허공에서 내려온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고 혀가 입 안을 휘저었다. 천천히 들썩이면서 들락거리는 느낌이 일었다. 그러나 그대로 있기 힘들어진 로라스는 침대 매트를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하나의 건장한 그림자가, 두 사람분의 교성이 방안을 뒤흔들고 있었다.
“하아…, 아…! 헉. 흐……, 으윽.”
“아, 아앗. 흐윽! 으응…. 알베르토…….”
감미로운 교성보다도 한 마디의 부름이 더 불을 당겼다. 자극적인 행위들로도 채워지지 않던 일말의 욕망, 그러니까 ‘그녀’와 일체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싶은 욕심이 시바 포가 자신을 부름으로서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그 역시 아나벨라라는 이름을 읊조렸다. 거친 숨과 함께 수 차례나 반복해서 말이다. 그것은 마침내 절정에 이르게 되는 나중까지 계속되었다.
“크흑……. 하아…….”
아찔한 기분과 함께 눈꺼풀이 떨렸다. 시바 포의 안에서 토정한 로라스가 한숨처럼 숨을 토했다.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던 팔을 풀 무렵에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볼 수 없다는 전제로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그 욕정어린 표정이 지금도 그대로라는 것을. 로라스는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침대에 몸을 파묻듯이 누워 숨을 고르는 동안 시바 포가 그의 어깨를 베고 누웠다. 로라스는 그녀의 뒷머리를 쓸어내리고 머리카락에 입을 맞췄다. 시바 포가 물어왔다.
“무슨 생각을 했지? 방금까지 말이야.”
은신한 상태에서의 정사에 대한 소감을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맥락으로 로라스가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쓴웃음을 흘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내게서 달아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The End-
봤으면댓글쓰소 나도 댓글재미좀 보게. 안그럼 비번걸어삘거임-3-